2017년 07월 31일
유럽에서 독보적인 놀이터 디자이너로 알려진 귄터 벨찌히는 한국 놀이터를 보고 생각보다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국 놀이터를 보고 아주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름 날씨는 그렇게 더운데 왜 놀이기구는 다 플라스틱입니까? 아이들보고 어떻게 놀라고요? 햇볕도 뜨거울 텐데 왜 그늘이 하나도 없지요? 어딜 가나 놀이터가 똑같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중앙에 비슷비슷한 놀이기구 하나가 떡하니 들어서 있더군요.” <귄터 벨찌히 초청 강연 현장, 세모편지, 글 황세원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조절하고 통제해야 하는 상황을 통한 배움을 얻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어린이가 안심하고 뛰어 놀며 배울 수 있는 놀이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크리에이션은 국민디자인단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 전문가, 행정이 함께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우리들을 위한 공원을 만들어 봤습니다.
흔한 동네 놀이터
7월 한여름, 서울에서 2시간 가량 달린 끝에 도착한 강원도 포남동. 주민 디자인단을 만나기에 앞서 과제 대상인 아파트 단지 사이의 놀이터를 둘러 보았습니다. 내 어린 기억 속의 놀이터는 재잘재잘거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는 왁자지껄한 놀이공간이었는데 이 곳의 첫인상은 삭막했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것도 물론이며 지나가는 사람 한 명 없는 공간. 이처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놀이터는 어느 동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땡볕에 홀로 쐬고 있는 흔하디 흔한 놀이기구들에 손을 대 보니 화상을 입지 않은것이 다행이도록 뜨거웠고 놀이터 중간에 깔려있는 지압로는 맥반석이 되어 도저히 시도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어딘가 빈 듯한 느낌의 놀이터를 둘러보고 디자인단을 만나러 주민센터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국민디자인단
사실 거리를 걷다가 빈번히 보이는 흔한 동네 놀이터를 보고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와 있지 않는 이유는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PC 또는 다른 디지털 기기로 놀이를 하고 있겠구나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강원도 강릉시의 여성가족과에서 추진한 이번 과제를 통해 놀이터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고 재미없는 놀이 공간인 놀이터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강릉시는 이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디자인단(1)을 모집하였고 분야 전문가, 디자인 전공자, 정책수요자, 행정 그리고 코크리에이션이 서비스 디자인 전문가 및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였습니다.
(1)국민디자인단은 공급자인 공무원과 수요자인 국민, 서비스디자이너 등이 함께 참여하여 서비스디자인 방법을 통해 기존의 정책을 수요자 중심으로 재해석하고 개발하는 활동을 하는 다학제 팀을 의미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미래 놀이터의 모습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 놀이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습니다. 코크리에이션은 워크숍 퍼실리테이터로서 대화를 촉진하고 모두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주민 입장에서 바라본 놀이터의 주요 문제점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놀이터 진입로 턱이 높아 어린 아이들과 유모차 진입이 어려움
철봉의 쇠가 녹슬고 그네 손잡이가 두꺼워 사용하기 꺼려짐. 놀이시설 개선 필요.
안전한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위험한 경험일지라도) 할 수 있는 놀이기구가 필요
아이들이 만족하는 놀이터 시설보다 놀이터를 공원화 시키는 공간활용이 필요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의 쉴 공간이 부족
놀이터와 주차장의 경계 불분명
지역주민, 전문가 그리고 행정의 입장에서 다양한 정보를 주고 받으니 많은 개선 아이디어와 방향성도 함께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놀이터의 모습을 무엇일까요?” 라는 질문을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미래 놀이터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강릉시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새로운 어린이 공원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공간
아이 뿐만 아니라 가족과 지역주민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상상했던 놀이터의 미래 모습을 주민디자인단과 함께 정리해보니 아이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은 “모험” 임을 알 수 있었고 아이와 가족, 지역주민, 모두를 “가족”으로 통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어린이&가족 모험공원” 이라는 테마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어린이&가족 모험공원 만들기
“어떻게 하면 어린이&가족을 위한 모험공원을 만들 수 있을까?” 코크리에이션은 서비스 디자인 퍼실리테이터로서 자유로운 발상과 참여를 유도하며 미래모습을 위한 아이데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아이데이션은 라운드로빈, 브레인라이팅 등 방법이 매우 다양하지만 방법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대상 놀이터의 위성 사진을 출력한 커다란 종이 위에 아이디어를 직접 배치해보며 새로운 방식의 아이데이션을 진행하였습니다.
끝없는 아이디어들의 향연 속에서 서로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시간이 지나고, 아이디어 우선순위 결정을 위하여 아이디어 그리드를 사용하였습니다. 적합성과 시급성의 관점으로 아이디어를 배치해보았는데, 한쪽 면으로만 몰려 겹겹히 겹치게 되었습니다. 도출된 아이디어 모두 적합하고 시급했던 아이디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우리는 신속하게 우선순위 선정기준을 “어린이&가족 모험공원을 조정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로 바꾸어 평가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중요도를 얻은 주요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보리스트 모험놀이시설을 설치하여 기능적 놀이가 아닌 사회적 단계의 놀이로 어린이들의 탐구 및 표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생태계를 이해하여 자연 친화적인 경험으로 감각을 일깨우는 체험을 어린이에게 제공합니다.
어린이 놀이시설과 잔디광장 주위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휴식을 위할 수 있도록 피크닉 테이블을 설치한 가족휴식공간을 조성합니다.
유아를 동반한 가족이 유모차를 끌고 놀이터에 진입할 수 있도록 턱을 낮추고 경사로를 설치하여 어린이와 가족 모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마무리
총 3일의 워크숍에 참가자 모두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유쾌하게 워크숍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이터와 아이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워크숍을 마친 후 지역주민들은 “워크숍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회의하니 더 많은 아이디어와 의견이 나온 것 같다.” 며 만족하셨고 “아이디어 모두 반영되었으면 좋겠다.” 라며 기대를 안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행정에서 도출된 모든 아이디어를 반영할 예정이라며 연락주셨습니다. 이후 일방적인 정보 전달 형태였던 주민 설명회와는 다르게 주민디자인단이 직접 지역 주민들에게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협력적 공정회가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디어가 반영된 결과물만이 성과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해 행정과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성과라고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