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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회고] 디자인 도구의 힘: 스케치는 결과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꺼내는 도구

아동참여 공간 기획 공동디자인 프로젝트 회고



아동참여 공간 기획 워크숍을 기획할 때만 해도 스케치나 모형 만들기와 같은 활동에 다소 회의적이었습니다.

공간 기획 워크숍에서 자주 활용되는 활동이기는 하지만, 실제 기획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형식적인 산출물을 만들기 위한 활동은 아닐지, 아이들이 그린 결과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제 공간 기획에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본 프로젝트에 적용하기 전, 먼저 베타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테스트를 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림 없이 말로만 질문했을 때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원하는 공간에 대해 물으면 짧게 답하거나, ‘편안한 공간’, ‘쉴 수 있는 공간’처럼 비교적 포괄적인 표현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공간을 그리고,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설명하도록 하자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종이 위에는 몇 가지 요소만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었지만, 왜 그렇게 그렸는지, 왜 그 위치에 배치했는지,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설명하기 시작하자 그림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경험과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공간을 이용하며 느끼는 감정부터 동선의 불편함, 자신이 원하는 이용 방식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본 프로젝트에서는 스케치 활동을 도입했습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매개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더 풍부하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기획해 운영했습니다.

본 프로젝트에서도 아이들은 종이에 그린 것보다 훨씬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 다른 아이들이 “그런 것도 있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서로의 그림과 이야기를 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처음의 아이디어를 함께 확장해나가기도 했습니다.

어른의 관점에서는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아주 큰 인형을 놓아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여기를 잘 아는데, 이쪽으로 이동하면 다른 사람과 동선이 겹치니까 입구와 이동 경로가 나뉘면 좋겠어요.”

“친구들과 이용하고 싶을 때도 있고,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용 신청함을 만들어서, 필요할 때 공간을 신청해서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어떤 가구를 놓을지,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요소부터 시선과 동선, 혼자와 함께 이용하는 방식, 공간을 어떻게 신청하고 사용할지와 같은 운영 방식까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 확장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면 다른 아이들이 “그런 것도 좋겠다”고 반응하거나 새로운 의견을 덧붙였고, 어른들이 “그런 생각도 했구나”라며 관심을 보이면 아이들은 그 이유와 상황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진다는 경험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계기가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의견이 없어서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꺼내어 표현할 수 있는 방식과 기회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문이나 인터뷰에서 “어떤 공간을 원하나요?”라고 질문했다면 ‘편안한 공간’, ‘예쁜 공간’처럼 비교적 포괄적인 답변에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직접 그리고, 배치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아이들이 말하는 ‘편안함’이 무엇인지까지 드러났습니다.

아이들이 말하는 ‘편안함’은 누군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고, 혼자 있을지 친구와 함께 있을지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 이동 경로나, 공간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는 방식도 중요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스케치의 가치는 그림의 완성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얼마나 잘 그렸는지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였습니다. 참여자의 경험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드러났는지, 서로의 생각이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되었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스케치와 모형 만들기 같은 디자인 도구는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말로 바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을 그리고, 만들고, 배치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밖으로 꺼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한 사람의 표현을 다른 참여자가 보고 들으며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생각을 연결하고, 새로운 의견을 더할 수 있게 합니다.

처음에는 스케치를 워크숍의 산출물로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참여자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그것을 만드는 동안 어떤 생각을 발견하고 어떤 이야기를 꺼냈는지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도구는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말 이외의 또 다른 언어를 제공합니다.

글 | 최수정(공동디자인 기획자 · 서비스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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