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회고 | 정책개발 수상사례] '재활용 동네마당' 수요자 참여 정책개발 프로젝트가 알려준 것
서로 다른 전문성이 만났을 때 생기는 시너지

정책을 만들 때, 국민과 전문가와 행정이 한 테이블에 앉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낯선 풍경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과 기준을 가진 이들이 한 문제를 두고 함께 답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낯선 자리가 만들어낸 결과가, 때로는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만들어낼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정책 수요자, 행정, 전문가가 정책을 개발할때 공동디자인(Co-design)방식으로 접근했을 때 어떤 시너지가 생기는지, 환경부의 '재활용 동네마당' 국민디자인단 사업을 통해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아파트에는 있고, 빌라 단지에는 없던 것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에게 분리수거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닙니다. 단지 안에 분리배출 공간이 이미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당시에는 일반주거지에는 그런 공간이 조성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의 일반 빌라 단지처럼, 개별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는 아파트와 같은 분리배출 공간이 없었습니다. 집집마다 문 앞에 내놓는 문전수거 방식에 의존하다 보니, 악취와 미관 저해, 재활용 자원의 비효율적 처리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는 실험적으로 '재활용 동네마당'이라는 거점 분리수거 공간과 수거 용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설을 그냥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제작에 앞서 정책수요자(주민), 행정, 전문가, 디자이너가 함께 협업하는 국민디자인단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기로 한 것입니다.
거점수거시설은 설치 과정에서부터 님비(NIMBY) 현상이 뒤따르고, 설치 이후에도 무단투기와 악취 문제로 지역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실제로 분리수거 폐기물이 아닌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가 뒤섞여 버려지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정작 그 공간이 필요한 지역 주민들이 오히려 '재활용 동네마당' 설치 자체를 꺼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서비스디자이너, 각 분야 전문가, 지역 주민(통장님들), 담당 공무원 등 7명으로 구성된 국민디자인단이 공동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보다 값진 것 - 서로 다른 경험과 전문성이 만나는 순간
공동디자인의 장점은 흔히 '다양한 사람이 모이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단순한 예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워크숍을 진행하며 체감한 진짜 가치는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성이 한자리에서 만났을 때, 하나의 아이디어가 전혀 다른 가치를 갖게 될수 있습니다.
워크숍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는 분리수거함에 센서를 부착해, 사용자가 다가가면 음성으로 분리배출 방법을 안내해주는 '분류 알림 재활용 수거함'이었습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 자체는 평범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시도된 방식이니까요.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워크숍에서 다른 관점의 가치를 갖게 된 건, IT 전문가로 참여한 참가자가 실현 가능성을 짚어준 순간이었습니다. 센서 단가가 개당 500원 단위, 전체 설비가 1만원 단위로 설치가 가능하다는 설명이 나오자, 팀원들은 이 아이디어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재활용 동네마당 하나를 설치하는 데 드는 전체 비용이 2천만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비용으로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저렴하고 실질적인 방안이라는 사실을 팀 전체가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막연한 아이디어가 '실제로 검토할 수 있는 안'으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지역 주민들의 다른 관점에서 가치를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분리수거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이를 통해 환경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관점은 단순한 수거함 개선을 넘어, '재활용 분리수거 학습문화공간'이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습니다. 재활용 동네마당의 위치만 학교 인근에 설치해 조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분리수거 참여에 사회봉사 점수나 포인트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에 대한 이해와 지역의 맥락을 가장 가까이서 알고 있는 주민만이 던질 수 있는 의견이었습니다.

폐기물 처리 전문가의 역할도 시너지를 더했습니다. 재활용 동네마당의 분류 기준을 적용한 분리수거함을 가정내 비치할 경우, 1인가구 같은 소규모 가정에서는 분리수거함 공간이 사용자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세분화해 분류하더라도 수거된 재활용품은 처리 과정에서 다시 2차 선별을 거친다는 현장의 처리 방식도 공유했습니다.
이 정보 덕분에 팀은 '분류기준을 굳이 세분화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분류 기준 자체를 축소하는 아이디어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기존 5칸으로 나뉘던 분리수거함을 3칸으로 줄이는 방식)
공동디자인의 시너지는 바로 이런 점입니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의 관점을 거치면서, 실현 가능성과 적합성이 검증되고 확장되는 과정.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식이 부딪히며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다시 평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공동디자인이 만들어내는 진짜 가치였습니다.
포괄적 합의가 만든 창의적 대안 - 골칫거리에서 배움의 공간으로

이렇게 다양한 관점이 쌓이면서, 워크숍의 흐름 자체도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무단투기를 막을 것인가'라는 관리자 관점 질문에서 출발했지만, 논의가 깊어질수록 '아이들이 유쾌한 경험을 통해 분리수거를 배우고,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자연스럽게 분리수거 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문제에 대한 방향성을 발전 시킬수 있었습니다.
재활용 동네마당을 골칫거리가 아니라 지역의 배움의 공간으로 다시 자리매김(리포지셔닝)하자는 합의였습니다. 위치를 학교 인근으로 옮기고, 기능을 교육의 장으로 확장하자는 것은 어느 한 전문가나 행정 혼자서는 쉽게 내놓기 어려운 결론이었습니다. 학생부터 형성된 폐기물에 대한 인식이 장기적인 분리수거 문화 형성에 근본적인 해결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 수요자가 겪는 불편, 행정이 감당해야 할 관리 부담, IT·폐기물 처리 전문가가 아는 현실적 제약, 디자이너가 그리는 공간의 가능성이 포괄적으로 합의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결론이었습니다.
실제로 최종 보고서에 담긴 참가자들의 소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워크숍 후 인터뷰에서 한 참가자는 "회의는 보통 길고 지루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회의들은 시간이 길었음에도 오히려 짧게 느껴졌고, 다양한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인식이 바뀌었다"고 답했습니다. 다른 분야에 소속된 사람들이 처음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워크숍을 거듭할수록 한 팀이 되어 재활용 동네마당을 함께 만들어가는 팀워크가 형성되었다는 의견 또한 있었습니다.
왜 공동디자인, 디자인 워크숍 퍼실리테이션인가?
정책 수요자의 요구와, 그 요구에 대응해야 하는 행정, 그리고 문제를 다각도로 검증할 전문가와 이를 형태로 구현할 디자이너. 이 네 주체의 협업을 진짜 시너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디자인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공동디자인 연구자 Blomkamp(2018)는 공동디자인이 공공정책에서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정책과 서비스가 실제 시민의 필요에 맞도록 하며, 서로 다른 집단 간의 협력과 신뢰를 만들어낼 잠재력을 갖는다고 설명합니다. 이 재활용 동네마당 사례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국민디자인단이 없었다면, 이 정책은 여전히 '무단투기를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라는 행정 중심의 질문에 머물러 있었을지 모릅니다.
Sanders와 Stappers(2008)는 디자이너가 전문가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판단하던 사용자 중심 디자인에서, 사용자와 전문가가 함께 창작하는 공동디자인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짚으며, 이 변화가 '집단적 창의성(collective creativity)'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재활용 동네마당의 아이디어들이 IT 전문가, 지역 주민, 폐기물 처리 전문가의 시각을 거치며 확장되었던 과정이 바로 이 집단적 창의성의 실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Trischler 등(2018)의 연구는 공동디자인 팀이 만들어낸 아이디어가 사용자 편익과 참신성 면에서 내부 전문가 팀만으로 만든 아이디어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데, 다만 이 효과는 팀이 응집력 있게 협력할 때만 나타난다고 강조합니다. 정책 개발을 위한 국민디자인단(리빙랩 등) 같은 활동에서 필요한 접근입니다만,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디자이너가 컨설턴트처럼 답을 만들어 제안하거나, 참여자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방적인 강의 방식으로 과정을 운영한다면 공동디자인이 가진 효과를 충분히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디자인 워크숍 퍼실리테이션 기술이 중요해집니다. 서로 다른 배경의 참가자가 협업 관계로 나아가느냐, 각자 자기 주장만 하다 흩어지느냐는 결국 워크숍이 얼마나 잘 설계되고 진행되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Aguirre 등(2017)은 디자이너가 다중 이해관계자 협업 과정에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수행하며, 맥락에 맞는 디자인 도구들을 설계해 논의의 흐름을 만들어간다고 설명합니다. 이번 워크숍에서도 이러한 역할은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참가자들이 직접 ‘발언 시간 지키기’, ‘전문용어 대신 쉬운 말 사용하기’와 같은 회의 규칙을 정하고, 퍼실리테이터(디자이너의 퍼실리테이터 역할)가 이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기초적인 퍼실리테이션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의 정책 목표를 하나의 서비스 컨셉으로 합의할 수 있도록 논의를 구조화하고, 사용자 흐름을 시각화하며, 아이디어를 포스트잇으로 가시화해 서로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도록 과정과 도구를 설계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워크숍의 퍼실리테이션이 없었다면, 서로 다른 경험과 전문언어를 가진 통장님, IT 전문가, 공무원이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꺼내고 하나의 결과로 합의해 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작지만, 함께 만든 답
돌아보면 동네 골목의 작은 분리수거함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시설 하나를 위해, 정책 수요자와 행정과 전문가가 각자입장에서 출발해 공동의 목표를 정의하고, 서로의 전문성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좋은 정책은 한 사람의 좋은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전문성이 부딪히며 아이디어가 검증되고, 확장되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리포지셔닝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 과정이 잘 일어나도록 자리를 만들고 이끄는 것, 바로 공동디자인적 접근과 디자인을 활용한 퍼실리테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 김민수
본 과제는 환경부와 코크리에이션이 함께 수행해 행정안전부 정책 성과공유대회에서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본 블로그는 성과공유대회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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