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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회고] 시장 상인 공동체에 브랜드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

공동체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합의하게 만드는 워크숍



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가 무언가를 함께 해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전문가의 도움도, 주도적인 구성원의 솔선수범도, 함께 회의하며 결과를 만들어가는 워크숍도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가 원하는 수준까지 변화하고, 그 변화를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공동체를 도와 이상적인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외부 기준에 맞춘 성과를 내기 위해 공동체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 상황을 마주했고, 그 과정에서 '외부가 요구한 성과'가 정작 공동체에게는 진짜 성과가 아니었던 경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공동체와 소통하며 발견한 숨겨진 문제,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오히려 진짜 성과에 가까웠던 사례 하나를 공유합니다. 지역 공동체와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낯설지 않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좋아 보이는 사업, 그 이면의 문제들

2014년 겨울, 한 전통시장이 정부의 재래시장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같은 업종의 상인들을 공동체 단위로 지원하는 커뮤니티 디자인 업체로부터 공동체별 브랜드 개발 프로젝트를 의뢰받았습니다.




사업 취지는 단순했습니다. 개별 상인을 하나하나 지원하기는 어려우니, 같은 업종의 상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고, 그 공동체가 공동으로 운영할 브랜드와 매장의 디자인을 개발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참 좋은 사업입니다. 그런데 좋아 보이는 이면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사업을 운영하던 기관은 대상 시장 안애 사무실을 운영하며 현장 거점을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10여개의 공동체 가운데 떡 판매자 클럽과 과일 판매자 클럽, 두 곳의 브랜드 개발을 맡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운영기관으로부터 이런 당부를 들었습니다.

  • 상인분들과는 10분 이상 대화하기도 힘들 것이다. (현업으로 인해 거점 사무실에서의 회의 시간도 내기가 어려운 상황)

  • 그들과 합의를 이루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 쉽게 생각하지 말아라.

시장 상인들과 함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간 고군분투했던 운영기관 직원들의 경험에서 나온, 진심 어린 조언이었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공동체의 브랜드 개발을 이끌어야 했기에, 무엇보다 상인들의 참여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가게를 운영해야 하는 상인분들이 장사를 멈추로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워크숍에서 상인분들은 무려 세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주셨습니다. 워크숍 장소가 시장 바로 옆이었다고 해도, 사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혹시 문을 잠그고 못 나가게 한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워크숍 전에 참가자들과 개별적으로 소통하고, 워크숍 계획을 미리 공유하며 신뢰를 쌓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워크숍의 안건을 '브랜드 개발'이 아니라, 그 사업에 참여하는 공동체가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로 설정했습니다. 기본만 지키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참여 문제는 의외로 간단히 풀릴 수 있었습니다.

사전 소통 과정에서 상인분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같은 시장 안의 상인들은 서로 동료일까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엄연히 경쟁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사업을 진행한다는 전제는, 사실 운영 효율의 관점에서 나온 결정이었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참가자들끼리 합의를 이루기도 어려운데, 공통 브랜드까지 함께 개발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한 요구였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더해, 국가 지원사업에 대한 오해와 불신도 있었습니다. 공동체 단위 지원금은 구성원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돈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고, 일부 상인분들은 운영기관이 필요 없는 디자인·교육을 진행하며 인건비만 가져간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회의에 나오지 않겠다고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참여하지 않던 한 분이 돌아온 순간

이런 문제들을 안고서, 공동체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워크숍의 안건을 저희가 정하지 않고 상인분들과 함께 정했습니다. 부정적인 이유로 참여를 꺼리시는 분께는 회의 진행 과정과 결과를 빠짐없이 공유해드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실제로 상인분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함께 나누는 자리로 안건을 잡자, 처음 예상과 달리 3시간이 넘도록 참여해주셨습니다.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는 기초가 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잘 정리해 참여하지 않으셨던 분들께도 공유해드렸습니다.

다음 워크숍을 준비하며 다시 소통하던 중, 처음에 가장 부정적이셨던 분이 참석하시겠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더 이상 '인건비만 챙겨가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이날의 '참여'가 브랜드 개발보다 더 큰 성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분이 함께한 워크숍에서는 과일 클럽의 문제를 정리하고, 그 해결책을 지원사업과 연결하는 중요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과일 클럽의 핵심 문제는 유통기한이 짧은 과일을 어떻게 재가공·상품화해 매출을 늘릴 것인가였습니다. 마침 시장이 대학가 근처에 있었기에, 건조과일 개발과 과일 주스라는 신상품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모두의 합의로 이어졌습니다.

워크숍이 끝난 뒤, 과일 클럽 리더분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가장 부정적이셨던 그분이 이른 아침부터 나오셔서 과일 주스를 직접 판매하고 계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사람은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그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돌아보면 과일 클럽에서 브랜드 개발 자체는 중요한 성과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함께 이해하고, 해결책에 합의한 것 그것이 곧 문제였고, 동시에 성과였습니다.

합의만 이루어지면 브랜드 개발은 정해진 절차를 따라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이후 실제로 매출이 좋아졌다는 감사 인사를 들었을 때, 그제서야 이 프로젝트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브랜드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

떡 클럽 공동체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운영기관의 결정으로 참여 매장은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소속 상인들 사이에 오래된 갈등이 있었습니다. 과거 시장 정기 휴일 외에 별도로 쉬는 날을 만들자고 합의했었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구성원 때문에 관계가 틀어져 공동체 활동 자체가 멈춰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금을 주고 브랜드를 개발하라는 것은,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낮은 요구였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하나씩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쌀을 이용한 상품과 관련된 문제들도 물론 나왔지만 '클럽 내 담합(신뢰 회복)'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클럽의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클럽에서 상품·브랜드 개발은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떡집 등을 운영해오신 분들에게 상품을 만드는 일은 이미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순위가 높았던 것은, 같은 목표를 가진 공동체로서 서로를 다시 신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클럽에서 저희의 실질적인 성과는 브랜드가 아니라 '총회의 설립'이었습니다. 총회가 만들어지고 함께 자리를 가졌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1년 뒤, 총회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해 전화를 드렸습니다. "당연한 걸 왜 물어보시냐"는 듯한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을 때, 오히려 그 무심함이 뭉클했습니다. 그건 저희가 해낸 일이 아니라, 그분들 스스로 해낸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했던 일이었겠지죠.



작지만, 스스로 지켜낸 성과

돌아보면 동네 시장의 작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워크숍에서 합의한 내용을 스스로 지키셨고, 그로부터 꾸준히 이익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저희는 여전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외부에서 정한 성과 지표를 채우는 것과, 공동체가 스스로 필요를 발견하고 합의에 이르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은, 외부의 평가 기준과는 별개로 공동체 안에 남아 계속 작동합니다.

아래는 참가자 회차별 참가자 소감 기록입니다. (포스트잇 기록:워크숍 보조 진행자)

<떡 클럽>



































<과일 클럽>



































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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